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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글로 느끼는 사람내음 <끼니>

베르양 2022. 10. 14. 16:37

탄수화물의 민족이라 할 정도로 한국인들은 끼니를 챙기는 것에 있어 진심이다. "밥은 먹었어?", "밥도 안 주고 일을 시킨다고?",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 등등.

 

나 역시 지인이 밥도 못 먹고 일 했다 그러면 어떻게 밥 먹을 시간도 안 주고 일을 시키냐고 같이 화를 내주기도 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나온 '밥은 먹고 다니냐'가 괜히 나온 명대사가 아닐 것이다.

 

 

『끼니』는 밥을 먹다 생긴 에피소드들과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에 대한 책이다. 참치집 사장님, 짬뽕집 배달원, 만둣집 부녀 등 끼니를 때우다 마주친 사람들의 별나고도 재밌는, 때론 안타까운 이야기 총 47편이 수록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포착해 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재미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일상을, 주변인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책의 제목은 끼니로 마치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음식을 곁들인 내용의 책이었다(aka 바질을 곁들인).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이 많다는 걸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만, 작가가 식사를 하면서, 끼니를 때우면서 직간접적으로 겪고 들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정말 다채로웠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예식장을 축하가 아닌 뷔페를 먹기 위해 가는 모습이라든지, '조금 촌스럽게 생긴 30대 여인'과 같이 다소 불필요한 표현들이 그러했다. 사실 표현의 자유를 운운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해당 에피소드는 과일가게 진상 주인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의도치 않더라도 인물을 나쁘게 표현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반면에 너무나도 공감되는 이야기도 있다. 좁은 골목의 식당에서 밥을 먹던 에피소드는 공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만이 오고갈 수 있는 골목에서, 작가가 밥을 다 먹고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나이든 어르신이 무작정 들어온 일이었다.

 

출퇴근길, 2호선 내선(까치산-신도림행 열차)을 타고 신도림에서 내리면 문 바로 앞의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밀치며 타려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 심지어 바로 뒤편에 휠체어를 타신 장애인분이 계셨음에도 먼저 타겠다고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모습도 정말 많이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인류애가 항상 박살이 나곤 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 혹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양보해야 하고, 나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고가 깔린 어른들이 정말 많다. 나이와는 상관 없이 서로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그 말을 대신 크게 얘기해준 것 같아 속 시원함도 느꼈다.

 

나 역시 밥을 먹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상을 돌아보았다. 안타깝게도 마땅히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지인과 함께 밥을 먹든 혼자서 밥을 때우든, 대충 어떤 밥을 먹었고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을 잘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주변에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끼니>라는 책을 읽고 있으면, 소위 말하는 '사람 냄새'라는 것이 글자를 통해서도 느껴졌다. 끼니를 때울 때 단순히 밥에만 집중하지 말고, 어떤 일이 내 주변에 일어나는지 한 번쯤 둘러보면 조금 더 사회를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예민하지 않는 분들이 읽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