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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아이러니 '과학 잔혹사'

베르양 2024. 5. 11. 14:24

인류의 역사에 있어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덕에 우리는 컴퓨터의 기능을 노트북과 핸드폰에 넣어 들고다닐 수 있게 되었고, 비타민D 합성용이던 태양열로 우리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과학의 발견·발전·발명이 우리의 삶을 너무나도 윤택지게 바꿔놓았다. (물론 그 윤택에 경제적인 면도 포함이 되어야 하지만 너무 복잡해지니 잠시 차치해두자.)

 

하지만 그 이면에 '윤리'가 상당한 문제가 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 특히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선 '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A라는 병에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약을 드디어 개발했는데, 정말로 이게 효과가 있는지 입증하기 위해선 우린 A 병을 가진 사람에게 이 약을 투여해야 한다.

 

물론 21세기의 우리는 이러한 실험을 위해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다. 이 약을 투여함으로써 어떤 기대효과를 볼 수 있고,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사전에 충분히 고지한 다음에도 받을지 말지를 말이다. 지금은 그렇게 신약이나 새로운 수술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더불어 사람이 아닌 다른 방법(병세포의 샘플을 채취해 약을 투여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법과 같이 말이다)으로 최대한 많은 결과를 내보낸 뒤에야 임상 실험에 들어간다.

 

하지만 과학/의학이 현저히 열약하던 그 옛날 시절, 앞서 말한 방법들로 선先실험이 불가하던 그 당시에 이 실험은 생명에게 다이렉트로 향했다. 매독에 대한 치료 방법을 연구해보겠다고 멀쩡한 사람들의 생식기에 임질 고름을 묻히기도 하고, 과학의 발전을 위함이라면서 간첩 활동을 하기까지. 그들의 실험과 행위는 지금의 우리가 보았을 땐 어떻게 사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위한 실험에 '희생'은 과연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대체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식물이나 곤충 이름에 붙어 있는 유럽인 이름을 볼 때마다 그 뒤에는 무명인 조력자가 한두 사람 혹은 심지어 십여 명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74

 


 

 

 

도서 <과학 잔혹사>에는 과거 해적질, 노예 무역, 시신 도굴, 살인, 동물 학대, 간첩 활동 등의 역사를 통한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굉장히 흡입력 있게 풀어준다. '닥터 프렌즈'라는 유튜브 채널에도 '의학의 역사'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하다.

 

단순히 과학의 발전을 위해 인간(아마 흉악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도 되는가, 하면 안 되는가와 같이 '인권'에 대한 윤리가 아닌, 그런 윤리를 돈, 명성, 호기심 등을 위해 저버리는 사건까지 소개한다. 책이다보니 닥터 프렌즈의 콘텐츠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직설적이고 잔인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동물 학대 - 전류 전쟁과 최초의 전기 처형]

동물 학대 카테고리에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구를 개발한 것으로 명성을 떨친 에디슨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인간적인 측면에선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란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전력의 종류인 직류와 교류 중 '직류'만을 맹신하던 에디슨은 교류의 발명으로 자신보다 점점 유명해지는 과학자 테슬라(우리가 아는 '그' 테슬라가 아닌)를 굉장히 미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에디슨은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그가 사업으로 밀던 '교류'를 악마화했다. 그리고 교류의 위험함을 알리려는 정점으로 동물을 이용했다. 사형수를 집행하는 방법으로 전기 처형에 이 교류가 매우 적합하다 말을 흘렸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강아지를 교류로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사람까지 말이다.

 

지금은 화장품 개발 시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일체의 실험이 없었다는 증명으로 '비건' 제품이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나보다 잘난 상대가 나락을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만들다니. 하지만 이 역시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으로 인해 전기의 종류와 위험성, 그리고 발전 가능성을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널리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명성에 눈이 멀어 - 얼음송곳으로 뇌를 수술한 의사]

로보토미(전두엽 절제술).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말 그대로 뇌의 '전두엽'을 제거하는 시술로, 19세기 말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많이 쓰였다.

 

'에가스 모니스'는 전두엽을 제거한 고릴라가 이전과는 다르게 온순해졌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사람에게 행했다. 대신에 그는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의 '연결 부위'를 제거하는 것을 택했고, 이 수술에 '백질 절단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머리뼈에 구멍을 내 알코올을 붇기도 하고, 긴 막대로 뇌 조직 일부를 끄집어낸 이 수술은 정신질환자들의 증세가 치료되고 완화되었다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길은 없다.

 

그리고 이 수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인 신경학자 월터 프리먼이 이어받게 되었다.

 

기존 모니스의 방식에서 약간의 변형(도구의 변경)만을 주고 수술을 집행하던 프리먼은 시간이 흐를 수록 머리뼈를 여는 행위가 환자의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든다고 판단, 안와(눈확)를 통해 전두엽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아낸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수술, 바로 경안와 뇌엽 절개술이다.

 

초창기 프리먼은 분명 뇌엽 절개술에 대한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을 잘 설명했다. 심지어 최후의 최후에 행해져야 할 수술이라고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명성에 사로잡혔고, 안와를 통합 절제술이 정신질환을 치료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뛰어난 수술이라고 홍보했다. 발작을 가라앉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는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중에는 서커스처럼 사람들을 불러모아 수술하는 장면을 보이게 했으며, 또 어떤 때는 수술 도중 문제가 생긴 환자를 두고도 그 부모에게 돈을 받으러 가기도 했다.(나중에 어떻게든 치료하긴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일이 중세시대가 아닌, 불과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안 된 1930~4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 수술은 현대 의학에서 무작정 뇌를 파내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만 정확히 제거해내는 외과 수술법으로 발전했다.

 


 

인간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그로 인해 과학이 발전했단 사실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1차 세계 대전의 나치, 일제강점기의 마루타 등 정말 잔혹하고 사람이 해선 안 될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 때 당시에 기록된 과학/의학적 지식은 아마도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을 것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지식을 쓰는 것이 옳은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금연, 유기농, 색소와 보존제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 건강에 좋다는 이 방법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방법들은 모두 바로 나치 의사들이 개발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제3제국의 의학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만, 이 처방들에 영감을 준 '순수성'에 대한 집착은 나치 의사들에게 악명을 안겨준 야만적 실험들에도 영감을 주었다. - p.213

 

과학에 생명, 인간, 더 나아가 인권 등의 사상과 가치관이 끼게 되면 골치 아픈 일들 밖에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일부 더럽혀진 방법을 통해 인간과 동물 등 생명의 수명이 늘어나고, 삶이 나아지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다. 이 두 사이의 간극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모든 과학자들이 가지게 될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