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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Much Review/공연.책

[Review] 뭐라도 되고자 하는 이를 위한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베르양 2024. 11. 4. 21:16

오타쿠. 과거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그 의미가 많이 확대되어 광적으로 한 분야를 파고들고,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철도에 큰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사람을 철도 오타쿠,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축구 오타쿠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워낙 서브컬처를 좋아했던 나도 오타쿠 소리를 듣곤 했는데, 현재에 들어서선 그 축에 발도 못 끼게 되었다.

 

대뜸 오타쿠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한 일본인이 루마니아 오타쿠가 되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쓴 에세이 한 편이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어? 루마니아가 대체 어디지..?

 

 

나라에 대해서 많이 아는 편은 아니지만, 루마니아는 어디선가 들어본듯 아닌듯 너무나도 생소한 곳이다. 찾아보니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와 헝가리 아래에, 국면에 바다가 없이 육지로 꽉 감싸여진 나라다. 루마니아인들은 라틴계 민족에 루마니아어를 주로 사용하며, 인구는 대략 2천 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드라큘라’의 어원의 명칭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루미나에 가본 적도 없는 일본인이, 도대체 어쩌다가 루마니아어로 루마니아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작가 사이토 뎃초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고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뒤 방 안에 틀어박힌 채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자각이 있었는지, 방 안에서 닥치는 대로 영화를 섭렵, 그 안에서 루마니아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영화의 이름은 <경찰, 형용사>. 이 영화에 매료된 작가는 일평생 언어 배우는 것을 싫어하더니, 갑자기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유럽의 언어가 그러하듯, 루마니아어에도 명사에 ‘성별’이 붙는다. 작가는 이 부분이 신기하면서도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다 잊어버렸지만 나 역시 4년 동안은 독일어를 배웠기에 명사에 성이 붙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정말 놀랍게도 재미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독일어는 남성/여성에 중성까지 포함되어 있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더 잘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이런 흉내 내기가 사실 중요하다. 비평이든 창작이든, 스포츠든 어학이든, 나아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부 모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도서의 제목답게 작가는 그냥 뭐든 했다. 방 안에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영화라도 봤고, 보다보니 루마니아에 관심이 생겨 그냥 공부했다. 누가 시킨 것도, 하라고 협박한 것도,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했다. 그냥 했을 뿐인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취급받는 히키코모리에서 명실상부 작가가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크게 성장한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작가를 보면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조세호 : 영화도 보시고 책도 보시고..

유재석 : 언제 다 합니까 그걸?

이동진 : 인간 관계가 망하면 됩니다.

 

 

나는 번역이라는 것이 타국의 언어 뿐 아니라 문화까지 잘 알아야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도 같거나 비슷한 뜻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는 말들이 많듯이(따뜻하다, 따숩다, 뜨뜻하다 등), 다른 나라의 언어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영미권에서도 많이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널리 알려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도 아닌 루마니아어라니. 실제로 유학을 가보지도, 하다못해 여행을 가보지도 않은 작가가 작지만 소중한 그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이 루마니아에 대해 공부했을지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 좌우명은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이다. 이 좌우명은 책을 알기도 전부터 내가 항상 뇌리에 새기는 말이었다. 운동을 한 시간씩 못 하더라도, 짬날 때 몇 회씩 스쿼트를 한다면 안 하는 것보다 분명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후에 일어날 일이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무릅쓰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이직에도 성공했다.

 

어느 누구는 “안 하느니만 못 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령 조용히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쓸데없이 말을 꺼낸다거나 할 때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상황판단은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도서가 마치 나의 좌우명에 공감해주고 나를 응원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꽤나 좋은 좌우명을 갖고 있음에도 작은 일만 찔끔찔끔씩 추진하고 있는 나에 비해, 히키코모리라고 자신을 낮잡아 본 작가가 오히려 더 추진력이 강하고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행行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일도 주저하고 있지만, ‘루마니아’라는 정말 생소한 국가의 루마니아어를 배운다는 그의 도전 정신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고 본다.

 

 

공부든, 여행이든, 이직이든 무엇이든 간에 지금과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도박이나 마약과 같이 불법적이거나 나와 주변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먹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도전해도 좋다고 응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도 좋다고 본다. 이런 자의식을 사춘기의 방황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인생의 미학으로 키워가는 놈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